201cm 81kg의 깡 마른 체격, 하지만 그에게 볼이 전해졌을때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는 마법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 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밀러타임, 그 주인공 인디애나의 전설 레지밀러이다.
(1)레지밀러의 슈팅
그는 1987년 1라운드 11순위로 nba에 입성하여2005년까지 18년 동안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만 뛴 그야말로 인디애나의 전설이다. 그의 번호 31번은 페이서스에서 영구결번 되었다.
전설적인 여자농구선수의 동생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 일지도 모르지만,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서 태어난 레지밀러는 태어났을 당시 엉덩이뼈의 기형으로 4살때까지 보조기를 차야했다고 한다. 다행히 보조기를 땐 후 농구를 할 수 있었는데, 이는 레지밀러에게도 그리고 농구에게도 축복이었다.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농구에 전념했던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렸을적 레지밀러는 1살 많은 누나인 셰릴과 1대1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의 누나 셰릴은 미국 여자농구의 레전드였다. 후에 레지밀러의 감동스런 은퇴식에서도 레지밀러가 말하듯 그의 누나는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감사하게도 지금 이곳에 농구의 전설 3명이 함께 자리를 해 주었다. 마이클 조던과 매직존슨, 그리고 내 누나이다.”
레지밀러의 누나 셰릴 밀러는 고등학교 시절 한경기에서 105점을 넣은 기록이 있었으며, 여자농구 명문 USC에서 뛰었다. 84년 LA올림픽 미국 여자농구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심지어 남자농구 독립리그인 USBL에 여자선수로써 드래프트 지명을 받기도 했다. 90년대 여자농구의 대스타였으며,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는 여자 농구의 전설이다.
(2)레지밀러와 그의 누나
이런 누나와의 1대1은 레지밀러에게 너무도 불리한 경기였다. 여렸을 적 장애로 신체조건이 불리하기도 했으며 누나와 키 차이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아무리 돌파를 해도 슛을 하는 순간 블락 당하기 마련이었다.
누나와의 경기를 이기기 위하여 멀리서 최대한 빨리 던지는 슛을 연습했는데, 후에 특이한 그의 슛폼과 무단히도 달리다가 잡은 후 바로 던지는 그의 스타일의 시작이 바로 이때였다고 한다. 빠른 돌파와 몸싸움으로 득점을 만들어가는 스윙맨이 리그를 주름 잡던 시대에 오프볼 움직임에 의한 슛을 주 무기로 삼았던 그의 스타일이 빛났던 데 있어 누나 세릴 밀러는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39점을 넣은 경기 후, 집에 돌아와 흥분하며 말하는 레지 밀러에게 덤덤하게 반응했던 가족 분위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날은 그의 누나는 105점을 터뜨린 날이었다. 누나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당시의 레지밀러였다.
-출처
(1)NBA.com
(2)NBA.com
Reggie Miller의 커리어(1) : 전설적인 여자농구선수의 동생
Reggie Miller의 커리어(2) :대학시절과 NBA드래프트
Reggie Miller의 커리어(3) : 루키시즌과 주전 슈팅가드 안착
Reggie Miller의 커리어(4) :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다, 첫 플레이 오프
Reggie Miller의 커리어(5) : 보스턴에 가로막힌 밀러와 페이서스 그리고 한계
Reggie Miller의 커리어(6) : 클러치 슈터 밀러 그리고 컨퍼런스 파이널
Reggie Miller의 커리어(7) : 밀러타임, 그리고 또 다시 컨퍼런스 파이널
Reggie Miller의 커리어(8) : 또 다시 시련
Reggie Miller의 커리어(9) : 밀러는 밀러 조던은 조던
Reggie Miller의 커리어(10) : 다시 또 밀러를 가로막은 닉스
Reggie Miller의 커리어(11) : NBA 파이널 무대에 서다
Reggie Miller의 커리어(12) : 노장 그리고 리빌딩
Reggie Miller의 커리어(13) : 젊은 인디애나 그리고 노장 밀러
Reggie Miller의 커리어(14) : 밀러의 마지막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