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4대 센터중 막내
먼저 리그에 입성했던 페트링 유잉, 하킴 올라주원 기량이 만개해 있었다. 데이비드 로빈슨도 이들과 대항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센터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리그에 발을 내딛자 마자 그 존재감을 알린 샤킬 오닐. 흔히 이 네 명을 90년대를 대표하는 4명의 센터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쇠화된 선배들은 은퇴했지만 오닐은 2000년대를 지나서 가지 선수행활을 하다가 2011년 은퇴를 발표한다.
대학생 샤크, 될성 싶은 떡잎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에 입학한 오닐은 1학년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1학년 신입생 기간에 32경기 동안 평균 28.2분을 뛰면서 13.9득점과 함깨 12.0리바운드, 1.9개의 어시스트와 3.6개의 블락슛을 기록한다.
3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더욱더 좋은 기록을 내기 시작하는데, 32분으로 늘어난 출장시간에 평균득점 24.1득점을 올리고 14리바운드와 1.5어시스트, 5.2 블락을 기록하여 공수 양면에서 대단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샤킬오닐 대학시절 영상
올랜도 시절 샤크, 올랜도의 희망으로 파이널을 안기다
마침내 3학년을 마친 오닐은 1992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당시 창단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올랜도 매직은 1번픽으로 오닐을 지명한다. 시즌 최하위를 달리던 팀들의 리빌딩 과정에 상위픽으로 대어급의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과연 하위권을 전전하던 올랜도 매직이 오닐의 가세로 얼마나 승수를 더 늘릴 수 있을까 하고 사람들은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시즌 초반, 많은 사람들이 올랜도 매직의 경기를 관심있게 봤다. 과연 이 신인이 리그 내에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도 함께였다.
때문에 시즌 초반 뉴욕 닉스, 휴스턴 로켓츠와의 경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리그내의 최고의 센터들이 버티고 있는 팀이었기 때문에, 샤킬오닐이 닉스의 유잉과 로켓츠의 올라주원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활약할 수 있을지 몹시 흥미로웠다.
올랜도는 뉴욕을 상대로 패배하지만 당시 동부 최강의 센터로 군림하던 유잉과 대등한 경기를 보인 오닐은 리그의 적응기가 필요 없을 듯 했다.
그리고 홈에서 휴스턴과 대결하게 되었다. 올라주원은 많은 공격시도를 하지 않았지만, 기술적인 스텝과 오닐보다 긴 슈팅레인지를 이용하여 오닐을 공략한다. 올라주원은 능숙한 플레이로 오닐에게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올랜도는 승리를 따낸다.
데뷔 첫해, 신인왕을 거머쥐고 올스타에 선발된 오닐의 등장은 충격 그자체였다.
우월한 신체사이즈를 바탕으로 리그의 명센터들에게 파워와 스피드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은 많은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짧은 슈팅레인지와 낮은 자유투 성공률은 약점으로 지적 되었다.
전시즌 21승 61패를 기록했던 올랜도는 오닐이 가세한뒤 20승을 더 올리며 5할 승률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93년 드래프트에서 1번픽으로 뽑은 크리스웨버를 골든스테이츠와 트레이드 하여 앤퍼니 하더웨이를 불러들인다.
이렇게 하여 페니-샤크의 조합이 탄생하였고, 이 둘은 리그의 새 바람을 몰고 온다. 그리고 1994년, 올랜도는 엄청난 위력을 보인다. 올랜도는 아틀랜틱 디비젼 1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른다. 앨리트급 가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루키 앤퍼니 하더웨이와 조금더 있으면 리그를 지배할 것 같은 오닐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리그 최고의 원투 펀치가 된 샤크-페니 조합은 보스턴을 누르고, 시즌 중 다시 합류하게 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를 제압한다. 그리고 전 시즌 그들에게 플레이오프 탈락을 선물 했던 레지밀러의 인디애나와 7차전 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마침내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조던이 야구로 외도 한 사이 리그 판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이널에서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가 신-구 대결을 하게 되었다. 젊은 혈기의 샤크-패니, 그리고 이들을 맞이하게 될 하킴올라주원과 드렉슬러의 대결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올랜도 대 휴스턴의 NBA 파이널
하지만 전성기를 달리던 올라주원과 서부의 조던이었던 드렉슬러의 활약은 대단했다. 또한 아직 젊은 팀이었던 올랜도는 휴스턴의 조직력을 따라오지 못했다. 대 접전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파이널은 쉽게 휴스턴의 승리고 마무리 되었다.
4-0으로 올랜도는 휴스턴에게 스윕 당했지만 샤크가 올라주원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것은 아니었기에, 샤크란 플레이어에 대한 NBA 팬들의 기대는 더욱 부풀었다.
아쉽지만 오닐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물론 이후 다시 경험하게 된 파이널은 다른 팀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였다.
95-96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디트로이트와 애틀랜타를 누르고 쉽게 올라갔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그들을 기다린 팀은 역사상 최강의 팀이었다.
조던은 리그 최고의 플레이어였고, 피펜은 어느 팀에 들어가도 1옵션이 이상하지 않을 실력을 보유한 조력자였다. 또한 필잭슨 감독은 샤크에게 로드맨을 매치업 시키면서 로드맨이 공격리바운드를 잡아내며 최고의 활약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
올랜도 대 시카고의 컨퍼런스 파이널
시즌동안 72승 10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시카고는 올랜도에게 1승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닐의 올랜도에서의 커리어는 그렇게 마감되었다.
레이커스 시절 샤크, 3연패와 공룡의 리그 점령
80년대의 왕가였던 레이커스는 압둘자바, 매직존슨, 워디가 은퇴하면서 최고 수준의 팀 이미지를 잃었다. 91년 매직존슨의 예상보다 빠른 은퇴는 레이커스가 새로운 준비해야 함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닉 벤 액셀, 에디 존슨, 세발로스, 디박 등이 팀을 이끌었지만, 94-95, 95-96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돌파 하지 못했다. 체임벌린, 압둘자바를 데려오면서 재미를 봤던 레이커스가 샤킬오닐을 눈여겨 봤던것은 당연하였다.
샤크가 레이커스에 입단했지만, 레이커스의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레이커스 입단 첫해 서부4위 플레이오프 2라운드 탈락, 다음해 서부3위 서부 결승 탈락, 서부5위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 뿐이었다. 레이커스도 샤크도 만족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특히 97-98 서부 컨퍼런스 결승. 칼말론과 존스탁턴의 플레이가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던 그때, 시즌 평균 105.5점의 공격력 1위의 팀 레이커스는 시리즈 4경기동안 한번도 100득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유타의 수비에 패배하게 된다. 샤크는 1차전 19득점을 제외하면 31점, 39점, 38점을 기록하며 활약하지만 팀은 탈락한다.
98-99시즌, 샤크의 능력과 코비의 성장은 레이커스 팬들에게 큰 기대를 주기에 충분했다. 대뷔후 식스맨으로 출전 했던 코비는 이 시즌 부터 주전 슈팅가드로 출전하며 활약한다.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글렌 라이스를 영입하면서 부터 샤킬 오닐-코비브라이언트-글렌라이스 라는 위력적 라인을 보유하고 레이커스는 파이널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레이 오프 1차전에서 만난 휴스턴은 하킴 올라주원-스카티 피펜-찰스 바클리의 삼각편대가 베테랑의 힘을 보여 주었다. 샤크는 지난날의 빚을 청산하듯이 올라주원을 꽁꽁 묶어내며 활약한다.
다음 라운드는 데이비드 로빈슨과 신인 팀던컨이 트윈타워를 이룬 센안토니오 스퍼스가 상대였다. 전문가들은 센안토니오의 약간의 우위를 점쳤지만 시리즈는 너무도 싱겁게 끝나버렸다. 특히 화려하지 않았던 팀던컨의 플레이는 오히려 압도적이었다.
99-00 시즌 우승을 위한 변화의 시작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보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99-00 시즌을 기점으로 레이커스와 샤크는 변화를 맞이 한다. 바로 필잭슨 감독의 레이커스 합류 때문 이었다. 시카고에서 3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필잭슨은 레이커스에게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이식을 시도한다.트라이 앵글 오펜스 하에서 부상을 떨쳐낸 샤크는 최고의 센터다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게 된다. 79경기 출장하여 40분을 소화하면서 필드골 성공률 57.4% 리그1위, 평균 득점 29.7득점 리그 1위, 13.6리바운드 리그 2위, 3.8어시스트, 3.0블락슛 리그 3위를 기록하며 리그를 지배한다.
필잭슨 감독이 오면서 수비 조직력도 강화되었다. 샤킬 오닐-코비브라이언트-글렌 라이스로 이어지는 공격편대에 론하퍼의 영입으로 앞선 수비력도 보강되었으며 로버트 호리는 큰무대에 강한 한방이 있는 선수였다. 플레이 오프를 위한 준비는 모두 준비 된 것이다.
99-00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만난 새크라맨토 킹즈는 리그내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팀이었다. 제이슨 윌리엄스-페쟈 스토야코비치-크리스 웨버-블라디 디박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공격농구의 화려함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팬들은 1번시드와 8번시드의 대결이지만, 화려한 공격농구의 킹즈와 공격력에 수비를 보강한 레이커스가 어떤 경기를 만들어 낼 지에 대해 열광했다.
레이커스가 2연승을 거둔뒤 다시 킹즈사 2연승을 거두고 다시 레이커스가 승리하면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2라운드 상대인 피닉스 선즈는 제이슨 키드-페니 하더웨이라는 설레이는 가드진을 보유하고 션메리언과 클리포드 로빈슨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으로 빠른 농구를 구사했지만 센터인 룩롱리가 오닐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오닐이 다소 부진한 경기도 있었지만 30득점이상 15리바운드 이상의 모습을 여러번 보여주며 4승1패로 피닉스 선즈를 제압한다.
99-00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올스타라인업을 가진 포틀랜드였다. 포틀랜드는 많은 투자를 하면서 데이먼 스타더마이어-스티브 스미스-스카티피펜-라샤드 왈라스-사보니스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보유하였다. 한편에서는 레이커스보다 화려한 라인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시리즈는 명승부가 되었다. 경기양상은 사보니스를 중심으로 하는 포틀랜드의 빅맨들이 오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에 의해 바낄 것이 확실했다. 시리즈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레이커스의 승리로 마무리 된다.
레지밀러가 이끄는 페이서스와의 nba파이널. 샤킬오닐은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처절하게 제압한다. 2차전에서는 40득점 24리바운드 4어시스트 3블락슛의 기록을 남긴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빅맨들은 오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시리즈 전적은 3승2패로 6차전, 샤킬 오닐은 41득점, 12리바운드 4블락슛을 기록하며 승리한다. nba 파이널 6경기 동안 모두 30득점 이상 10리바운드 이상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파이널 MVP를 거머쥔다.
1988년이후 12년 반에 레이커스는 우승을 했고, 샤킬오닐은 정규시즌 MVP 올스타게임 MVP 파이널 MVP All NBA 1st Team, All-Defensive 2nd Team에 선정된다. 이후의 모든 강팀들은 우승을 위한 전제 조건이 사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로 바뀌게 된다.
00-01 시즌 사상 최강의 센터
전 시즌 리그를 초토화시켰던 샤킬오닐과 완전한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코비는 레이커스의 원투펀치를 형성한다. 오닐은 정규시즌 74경기 출장하여 평균 39.5분을 출전, 필드골 성공률 57.2%, 평균득점 28.7 득점, 12.7리바운드, 3.7어시스트 2.8블록을 기록하며 이번에도 리그를 제패할 위용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즌을 치르면서 코비는 샤크와 함께 레이커스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리그 최고 수준의 슈팅가드 반열에 올라선다.이전 시즌의 위용을 간직한 샤크와 성장한 코비는 상대팀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포틀랜드와 세크라맨토를 차례로 스윕하면서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른다. 또한 컨퍼런스 파이널을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스윕해버리면서 사람들은 샤크의 레이커스가 플레이오프를 무패로 마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00-01 시즌 필라델피아와의 NBA 파이널. 샤크는 44점 20리바운드 5어시스트의 엄청난 활약을 한다. 필라델피아에는 득점기계 아이버슨이 있었다. 코비는 15득점으로 부진하며 아이버슨에게 밀린 모습을 보였다. 단신의 아이버슨은 신장차이가 나는 레이커스의 가드진을 휘저으며 연장포함 44득점을 올린다. 많은 예상을 깨고 아이버슨의 필라델피아가 샤크와 레이커스에게 플레이오프 첫 패배를 선물한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오닐은 필라델피아의 골밑을 초토화 시켰고, 이에 대항하는 무톰보는 무력해 보였다. 코비도 분전하여 화력을 보탰고 5차전을 끝으로 레이커스가 2연패를 가져간다.
시즌 MVP는 아이버슨에게 빼앗겼지만, 시즌 필드골 성공률 57%는 리그 1위였고 평균득점 리그 3위 블락슛 리그 4위에 파이널 MVP와 All-NBA 1st Team, All Defensive 2nd Team에 선정되면서 리그는 아직도 샤크의 손아귀에 있는듯 했다.
01-02시즌 3연패의 달성
샤킬오닐은 레이커스에 합류한 이후 개인기록에서 가장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대단한 기록을 이어왔던 것일 뿐 하락한 기록이 그의 몰락을 말해주느 것은 아니었다. 기록이 하락했다고는 하나 필드골 성공률은 57.9%로 여전히 리그1위였고 평균득점 27.2득점으로 2위, 10.7리바운드와 2.0블락슛을 기록하고 있었다.플레이오프 시리즈가시작되자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를 스윕하고 2라운드에서는 4승1패로 샌안토니오를 제압한다. 또한 가장 각광받는 팀이었던 새크라맨토와 7차전 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6차전에서는 레이커스에게만 무려 40개의 자유투가 주어졌는데 그중 4쿼터에만 27개가 주어졌다. 편파 판정의 논란이 있었고 후에 밝혀진 사실은 심판이 브로커로 부터 돈을 받고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레이커스는 파이널에 진출했고 상대는 제이슨 키드가 이끄는 뉴저지 네츠였지만, 레이커스와의 전력차가 너무 컸다. 트리플 더블을 하는 등 키드가 분전 했지만 결국 레이커스에게 4연패를 당한다.
샤킬오닐은 레이커스에서 3연패를 이루어 냈고 시리즈 내내 압도적으로 골밑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파이널 MVP는 당연한 것이었다. 레이커스 3연패 기간 동안 샤킬오닐은 자신이 현존하는 최고의 센터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었다.
02-03시즌 4연패 실패와 불화의 시작
3연패 기간동안 최고의 존재감을 이루어낸 오닐과 레이커스에게 4연패 위업에 대해 기대가 모아졌지만, 이내 시련은 다가왔다.아직 압도적인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잔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부상으로 인해 결장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리고 레이커스는 코비를 중심으로 팀을 정비하고자 했다.
오닐의 팀이될 것인가 브라이언트의 팀이 될 것인가, 리그 최강의 원투펀치는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하고 자존심 강한 둘의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한다.
67경기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57.4%로 여전히 리그 1위, 평균득점 27.5득점 리그 4위, 11.1리바운드 2.4블락으로 여전히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샤킬오닐이었지만, 코비는 전경기 출장하며 평균득점 30점 6.9리바운드, 5.9 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 위치에 올라선다.
오닐은 팀내 최고 득점원 타이틀을 코비에게 빼앗겼고 코비의 발언권도 높아져만 갔다. 마침내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에게 2승4패로 패배하게 되자 코비와 오닐의 심상치 않은 불화에 대해 논쟁은 더 가열된다.
03-04시즌 실패한 올스타 라인업
3연패 이후 2라운드 탈락. 레이커스는 우승을 위해 전력보강에 나섰다. 지금도 회자되는 꿈의 라인업. 게리페이튼-코비브라이언트-칼말론-샤킬오닐 로 이어지는 대단한 라인업을 만들어 낸다.아직 우승 반지가 없던 페이튼과 칼말론은 우승을 위해 레이커스 행을 결정했다. 칼말론은 개인 기록 경신을 포기하면서 까지 레이커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코비가 17경기, 오닐이 15경기 결장하게 되고, 커리어동안 리그내에서도 준수한 내구도를 자랑했던 말론이 무려 40경기를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면서 이 라인업은 가동되지 못했다.
페이튼은 전경기 출장했지만 필잭슨 감독의 트라이 앵글 오펜스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이전 시즌과는 전혀다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오닐과 레이커스는 56승을 올리고 휴스턴 샌안토니오 미네소타를 꺾으면서 다시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디트로이트는 조직력이 강하고 수비가 좋은 팀이었다.
우승을 위해 최저연봉을 감안하고 온 스타플레이어 두명으로인해 4명의 스타 라인업을 보유한 레이커스에 비해 디트로이트의 선발라인업은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끈끈한 조직력은 수비에서 부터 압박했고 레이커스는 무너져 내렸다.
샤킬오닐은 데뷔이후 시즌 최소득점을 기록했고,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도 가장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어 가는 듯 했다.
시즌이 끝나고 레이커스는 코비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오닐은 코비와 더욱 더 대립하게 되고 불화는 '설'이 아닌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 진다. 둘중 하나는 떠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결국 레이커스는 캐넌 버틀러, 브라이언트 그랜트, 라마오돔과 06년 1라운드 픽과 07년 2라운드 픽을 조건으로 오닐을 마이애미로 보낸다.
마이애미 샤크, 조력자로 또 한번의 우승
마이애미는 신성 드웨인 웨이드의 조력자로 샤킬오닐을 선택했다. 지난 시즌의 부진으로 놓쇠화 된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아직 20득점 이상 10리바운드 이상은 거뜬히 해줄 수 있는 오닐이었다.
마이애미는 오닐을 영입함으로써 단숨에 우승을 바라보고자 했다. 샤킬오닐의 합류로 우승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젊은 팀의 에이스 웨이드와 샤킬오닐의 조합은 위력적이었다. 마이애미는 전시즌보다 17승을 추가하며 디비젼 1위로 플레이 오프에 안착했다.
오닐은 34.1분을 뛰며 필드골 성공률 60.1% 평균 득점 22.9득점 10.4리바운드 2.3블락슛을 기록하며 여전히 활약했다.
마이애미는 뉴저지와 워싱턴을 무패로 스윕하면서 8연승을 거두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고 디트로이트와 맞붙는다.
7차전 까지 가며 웨이드와 오닐이 공격에서 분전했지만, 패하게 된다. 플레이 오프 무대에서 샤킬오닐은 예전처럼 압도하지 못했다. 시즌중에는 10리바운드 이상 잡아낸 오닐이었지만 플레이오프 동안 7.8로 부진하며 탑클래스의 센터 위용을 잃었다.
05-06시즌 다시 한번 우승
분명 오닐은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파워를 앞세운 위력적인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들게 될 듯 했다. 22경기를 결장하였고 데뷔 이후 최소 시간의 플레이 기록이 났다. 성적은 20득점 9.2리바운드 1.8블락 슛으로 데뷔이후 처음으로 10리바운드 2블락슛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이애미의 중심은 오닐이 아니라 웨이드였고 오닐은 조연이었다. 제이슨 윌리엄스와 워커를 영입하고 알론조 모닝과 페이튼까지 합류하게 되자 젊은 팀이었던 마이애미는 베테랑들이 확실한 조연을 해주느 팀으로 변모하였다.
마이애미는 52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시카고 블수와 뉴저지 네츠를 제압하고 마침내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를 이기며 파이널 무대를 밟는다.
댈러스 마버릭스를 압도하며 4승2패로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게 되며 오닐은 네번째 우승을 하게 된다. 물론 마이애미 우승의 주역은 웨이드였지만, 오닐은 웨이드와 확실한 원투펀치를 조성하였다.
06-07시즌들어 오닐은 더 예전 모습을 잃어갔다. 34세가 된 오닐은 잔부상을 달고 살았으며 40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하며 평균 28.4분 출전에 그쳤다. 아직 힘은 밀리지 않았지만, 다리는 느리고 순발력도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상대팀들은 마이애미를 분석하면서 더이상 오닐에게 더블팀을 붙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 하게 되었다. 이해 마이애미는 1라운드에 전패로 플레이오프를 탈락한다.
피닉스 시절, 느려진 발과 기량하락
07-08시즌 오닐은 피닉스로 이적한다. 당시 피닉스는 스몰라인업을 기초로 빠른 농구를 구상하는 팀이었다. 즉 달리는 팀이었다. 노쇠화 되고 다리가 느린 오닐의 이적에 논란이 많았다. 피닉스는 플레이 오프에서 던컨과 노비츠키 등을 수비하기 위해 오닐을 영입했지만 오히려 내쉬를 필두로 한 빠른 농구에 흠이 되기도 했다.
결국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게 된다. 오닐은 플레이 오프에서 15.2득점 9.2리바운드를 기록한다.
08-09시즌 다시 건강을 찾은 오닐은 75경기에 출장했고 평균 30분을 소화하며 17.8득점을 기록하며 8.4리바운드 1.7 어시스트 1.4블락슛으로 좋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 실패하고 트레이드 된다.
클리블랜드 시절, 르브론의 조력자로서 조금의 부족함
클리블랜드는 웨이드를 중심으로 우승의 조연역할을 했던 오닐을 영입하여 에이스 르브론 제임스를 필두로 우승에 도전하려 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로 오면서 오닐은 더이상 파워풀한 스타일을 소화할 수 없었다.
슈팅레인지도 짧고 공격루트가 한정적이었던 오닐은 파워를 일어가면서 더이상 위력적인 선수가 아니었다. 르브론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오닐 자신은 12득점 6.7리바운드를 기록하는데 그친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알렌-가넷-피어스의 라인업을 구축한 보스턴에게 2승 4패로 무너지게 되자 클리블랜드는 오닐과의 재계약을 포기한다. 오닐의 영입을 실패라고 본 것이다.
보스턴 시절, 커리어의 끝부분
10-11시즌 개막에 앞서 보스턴은 오닐과 계약한다. 전시즌 오닐의 연봉이 2000만달라였지만 보스턴은 135만 달러에 오닐과 계약한다. 오닐은 은퇴를 준비해야 할 것만 같았다.
90년대 전성기를 맞은 최고의 센터들을 상대로 놀랄만한 활약을 하고 2000년대 초반 리그를 지배했던 그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고작 37경기에 출장하여 20.3분만 뛰며 9.2득점 4.8리바운드 1.1 블락의 초라한 기록을 남긴 그는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고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영구결번의 험난한 길
한때 리그를 지배했던 샤킬 오닐. 하지만 그의 뛰어났던 존재감과 그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구결번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올랜도 시절, 오닐은 데뷔 3년만에 최고의 플레이어로 도약했다. 올랜도는 파이널에 진출하기까지하여 오닐이 앞으로 올랜도의 미래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 받았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된1996년 오닐은 올랜도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와 1억 2100만 달러에 계약한다. 우승의 성과도 없었고 배신감을 선사한 올랜도에서 영구결번 될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우승을 한 마이애미에서 오닐은 조력자였다. 마이애미와 함께한 시간도 너무 짧았다. 피닉스와 클리브랜드 보스턴에서의 오닐은 전성기가 지난 저니맨이었다. 영구결번이 될리가 없었다.
문제는 레이커스였다. 레이커스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3연패를 이뤄냈던 오닐이었지만 레이커스와의 쌓인 짐들이 많았다. 표면적으로는 코비와의 불화, 내부적으로는 레이커스에 대한 배신행위 때문이었다.
2004년 오프시즌 레이커스는 오닐과의 재계약협상 중이었다. 코비에게 자존심이 상한 오닐은 3년간 9000만 달러의 연봉을 요구한다. 이 터무니 없이 높은 금액은 코비와 오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모양새였다. 코비의 성폭행 스캔들이 터지면서 코비와 샤크는 서로를 비난했고 레이커스는 서둘러 둘중 하나를 선택하여 팀을 재정비 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레이커스는 젊고 발전 가능성이 많은, 조던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면서 상품가치가 무한한 코비를 선택하게 되지만 레이커스로서는 오닐의 큰 규모의 연봉재한 자체가 배신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레이커스에서 3년간 9000만 달러를 제시했던 오닐이 05-06 시즌을 앞두고 마이애미와 5년간 1억달러에 계약한 것도 레이커스에게는 배신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커리어 막판 레이커스의 숙적 보스턴으로 이적한 것 또한 레이커스에게는 좋게 보였을 리 없다. 또한 레이커스는 영구결번에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긴 역사와 16번의 우승에도 영구 결번된 유니폼은 7장 뿐이다. 보스턴이 21개의 유니폼을 영구결번으로 걸어논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인색한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오닐의 영구 결번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오닐은 레이커스에서 영구결번식을 치르게 되었다.
샤킬오닐 커리어 믹스
샤킬오닐 정규시즌 기록
샤킬오닐 플레이오프 기록
샤킬오닐 커리어 하이
샤킬오닐 수상 기록